여자 여럿이 함께 섬기더라!
(누가복음 8:1-3)
설교 : 장빈 목사 (동광교회)
# 1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사 가운데 <精神(정신)>이란 것이 있습니다. 국어사전은, 정신이란 단어를 이렇게 풀어줍니다. ① (물질이나 육체에 대립되는 것으로) 영혼이나 마음, ② 사물을 느끼고 생각하는 능력 또는 그러한 작용. 첫째 정신이란, 물질이나 육체에 대립되는 그 무엇으로 영혼이나 마음입니다. 그래서 정신 상태를 설명할 때면, 정신이 나갔다거나 혹은 정신이 들어 왔다고 말하는 겁니다. 문제는 정신이 나가게 되면, 그 사람의 상태가 정상 궤도에서 벗어난다는 데 있습니다. 한 마디로 <정신 나간 사람!>, 곧 미친 사람이 되는 거죠.
그렇다면 정신이 나간 상태, 곧 미친 상태에서 헤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나갔던 정신이 돌아오게 하면 되는 거죠. 나간 정신이 다시 돌아와야 정상적인 상태를 회복하면 됩니다. 정리하면, 정신이란 우리 인간의 육체에서 나가기도 하고 반대로 들어오기도 하는 그 무엇입니다.
둘째 정신이란, 사물을 느끼고 생각하는 능력 혹은 그 작용이라고 했습니다. 이 경우 정신에 대하여 설명할 때, 정신을 잃는다고도 하고, 정신을 차린다고도 합니다. 문제는 정신을 잃게 되면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상실하여, 정신 나간 사람과 똑같은 상태가 된다는 점이죠. 반대로 정신을 차리게 되면 사리를 정확하게 분별하고 판단하게 되어 정신이 다시 돌아온 사람과 같은 상태가 되는 거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내 정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내 몸 안에 잘 있습니까? 내 육체를 떠나 어디론가 방황하고 있진 않습니까? 지금 나는 정신이 나간 상태입니까? 정신이 들어와 있는 상태입니까? 정신을 잃은 상태입니까? 정신을 바짝 차린 상태입니까?
베드로도 한 때 정신이 나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일단 정신이 나가자, 베드로의 판단력이 흐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죽어도 예수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베드로가, 하룻밤에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정신이 나간 상태였기 때문이죠.
그래서 베드로는, 베드로전서에서 이런 권면을 남겼습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 4:7). 공동번역으로 다시 듣습니다. <세상의 종말이 가까이 왔으니 정신을 차려 마음을 가다듬고 기도하십시오.> 정신이 나가 보았던 베드로의 권면입니다.
한 평생 살다보면, 정신을 쏙 빼놓게 하는 일들이 발생합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그 일로 한번 나가버린 정신이, 여간해서 잘 돌아오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그런 상태를 정신병(精神病)이라 부릅니다. 국어사전은 정신병에 대하여, <정신의 장애로, 말이나 행동이 정상적인 아닌 병적인 상태>라고 풀어줍니다. 정신이 나가버려, 판단력이 흐려지면서, 말과 행동에 이상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거죠. 그리곤 정신 내부의 조화가 깨지면서 인격의 파탄을 초래하게 됩니다. 그런 상태를 정신분열증(精神分裂症)이라고도 부르지요.
나의 정신이 여럿으로 분열되고 나니, 몸도 마음도 생각도 영혼도 도무지 평안하질 못합니다. 여럿으로 갈라진 정신이 이러 저리 난장을 치며 돌아다니는 바람에, 그저 정신이 혼미할 뿐입니다. 정신이 나가서 예수님을 은 30냥에 팔아넘겼던 유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죠.
# 2
누가복음 8장에서도 우리는 정신이 온전치 못했던 여인들을 만나게 됩니다. 8장 2절,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인데요, 새 번역에 따르면, <악령과 질병에서 고침을 받은 몇몇 여자들>이라 합니다. 그 여인들에게 악귀 혹은 악령이 들어와, 저들의 정신이 쫓겨나는 바람에, 정신 나간 사람이 되었던 거죠. 그런 사람을 귀신 들린 사람이라고도 하는데, 그 결과 저들의 몸까지 병에 걸렸던 겁니다.
그랬던 저들이 우리 주님을 만나 온전하게 회복되었습니다. 나갔던 정신이 되돌아와 정상을 회복하게 된 거죠. 얼마나 좋았을까요? 나갔던 정신이 되돌아왔으니, 그래서 미쳤던 사람이 정상으로 회복되었으니, 아마 새로 태어난 느낌이었을 겁니다. 그 일이 너무 고마워, 저들은 자기네 소유를 바쳐 예수님과 그 일행을 섬기기 시작합니다.
8장 3절,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를 섬기더라.> 여기서 <저희>라 함은, 8장 1절에 등장하는 예수님과 열두 제자들인데, 지금 각 성과 각 촌을 두루 다니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그 복음을 전파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들이 예수님과 제자들을 자기의 소유로 섬겼다는 겁니다. 공동번역은 이렇게 전합니다. <자기네 재산을 바쳐 예수의 일행을 돕고 있었다.>
당시 여성들이 자기 재산을 갖는다는 것, 요즘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여성 자체가 남성의 소유물처럼 여겨지던 시대였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 여인들은 자기 소유를 바쳐 예수님과 그 제자 일행을 섬겼다고 합니다. 그만큼 부유하고 유력한 집안의 여인들이었다는 반증이죠.
그 중 세 여인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니, 일곱 귀신이 나간 막달라인 마리아와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아무런 설명 없이 이름만 전해지는 수산나입니다. 그리고 다른 여러 여자들이 더 있었다고 합니다. 예수를 그렇게 죽이고 싶어 했던 헤롯왕을 섬기던 청지기의 아내 요안나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 참 흥미롭습니다. 고관의 아내가, 왕궁의 의사도 고치지 못했던 병을 안고 살다가, 예수님 만나 고침 받은 후, 자기 소유를 바쳐 예수님을 섬기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정신의 문제는 돈이나 권력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돈이 많다고 해서 나간 정신을 되돌아오게 할 수 없고, 권력을 장악했다고 해서 그 권력으로 악귀를 몰아낼 수 없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때, 그 분의 이름으로 악귀를 몰아내고, 그 병을 고침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늘 주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며 살아가는 일이 중요합니다. 늘 그 분과 인격적으로 교제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 3
그런데 누가는,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중 막달라 마리아의 이름을 맨 앞에 소개합니다. 그녀의 고향은 막달라, 일곱 귀신이 나간 여인, 그녀 역시 예수를 만나 고침을 받은 후, 자기 소유를 바쳐 그 분과 그 일행을 섬기고 있었는데, 그만한 재력을 가진 집안의 여인이었다는 뜻이죠.
집, 돈, 인맥, 사회적 배경, 그리고 고향도 있었지만, 그녀에게 없는 것이 하나가 있으니, <몸>에서 나가 버린 <정신>이었습니다. 일곱 귀신이 들어와 그녀의 정신을 몰아냈기 때문이죠. 하지만 성서는 그 일곱 귀신이 어떤 존재인지 말해 주진 않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막달라 여인 마리아가, 일곱 귀신으로 인하여 정신이 나간 상태로 살다가, 예수님을 만나 고침을 받은 후, 자기 소유를 바쳐 주님을 섬겼다는 겁니다.
마리아의 인생은 그 분 만나기 이전과 그 이후로 나누어집니다. 그 분 만나기 전 그녀는, 정신 나간 사람, 미친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날은 개처럼 네 발로 기는가 하면, 어떤 날은 새처럼 날겠다며 지붕에서 뛰어내리기도 하고, 어떤 날은 불에도 뛰어들고, 어떤 날은 물에도 뛰어들었습니다. 그런 그녀를 지켜보아야 하는 주변 사람들조차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그랬던 그녀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분 덕분에 나갔던 정신이 돌아와 정상적인 상태로 회복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이후의 마리아,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던 거지요.
주목할 점은, 예수께서 일곱 귀신을 어떻게 쫓아내주셨는지, 그녀의 병을 어떻게 고쳐주셨는지에 대해서 성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저 악귀를 쫓아주셨고, 병을 고쳐주셨다고만 적고 있습니다. 첫째는 너무나 자명한 역사적 사실이었기 때문이요, 둘째는 일곱 귀신을 쫓아낸 이야기 혹은 그녀의 병을 고쳐 주시던 이야기 보다 고침 받은 후 그녀가 예수님과 제자들을 자기 소유로 섬겼다는 이야기가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직도 자기 소유로 섬길 줄 모르고, 나에게 달라고만 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만나 정신이 돌아오자, 마리아의 눈에 일곱 귀신 대신 예수님과 제자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는 보이지 않던 예수님과 제자들이 눈에 들어오자, 그 주변에 있는 또 다른 사람들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8장 2절,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여자들이 보이기 시작했던 겁니다.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가 보였습니다. 수난나도 보였습니다. 다른 여려 여자들도 함께 보였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처럼 예수님을 만나 정신 차린 여인이 하나 둘이 아니었던 겁니다. 하여 마리아가 저들에게 말합니다. <여보시오, 주님의 사랑을 받아 새롭게 거듭난 아름다운 여인들이여, 우리 이제 예수님만 섬기며, 그 분의 사랑에 보답하십시다. 우리 소유를 가지고 저 분들을 섬깁시다.> 최초의 여신도 모임이라 할까요? YWCA 모임의 원형이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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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예수님을 만나, 새롭게 거듭난 여인들이 한 자리에 모이자, 저들의 정신이 주 안에서 하나로 통일되었습니다. 저들의 시선이 한 곳에 집중되었습니다. 마음도 하나, 뜻도 하나, 목숨도 하나, 하여 저들은 여럿이 함께 예수님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누구 하나 주님을 섬기는 이 일에 토를 달거나 다른 말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저희를 섬기더라!> <여자 여럿이 함께 섬기더라.>
우리가 하나 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안에 일곱 귀신이 들어와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름으로 모여도 마찬가지, 모이면 마구 시끄러운 모임, 이유는 그 안에 예수님 대신 일곱 귀신이 들어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정신이 주 안에서 하나로 모아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일곱 귀신이 들어와 우리의 정신이 몰아냈기 때문입니다.
일곱 귀신이 들어오면 시끄러워집니다. 귀신이 들린 사람들 여럿이 모이면 시끄러운 이유입니다. 틀림없습니다. 일곱 귀신 들린 여자 여럿이 모이면 시끄럽기만 합니다. 난리가 납니다. 불평하는 소리, 원망하는 소리, 저주하는 소리만 들립니다. 저들이 예수님 대신 일곱 귀신에게 정신이 팔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 병 고침을 받고, 일곱 귀신을 몰아낸 여인들, 이제 그 마음에 예수님을 모시고 삽니다. 그런 여인들 여럿이 함께 모이면 조용합니다. 말이 필요 없습니다. 앞을 다투어 예수님과 제자들을 섬기려고 합니다. 그 분이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시고, 일곱 귀신은 저 멀리 달아났기 때문입니다.
놀라운 일은, 주님을 만나 거듭난 여자 여럿이 함께 섬기기 시작한 후, 여러 기적들이 일어났다는 점입니다. 누가복음 8장에만 기록된 기적만 보아도 엄청납니다. 8장 22절 이하에선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셨고, 8장 26절 이하에선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을 고쳐주셨고, 8장 40절 이하에선 회당장의 딸과 열두 해 혈루증을 앓던 여인을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거듭난 여인들 여럿이 함께 섬길 때 기적이 일어났던 겁니다.
YWCA는 예수님을 만난 여인들 여럿이 함께 모여, 그 분과 제자들을 섬기며 많은 기적을 이루어낸 공동체임일 믿습니다. YWCA의 지난 90년, 마리아 같은 여인들 여럿이 함께 모여, 한 마음 한 뜻으로 이룩한 기적의 나날들이었습니다. 확실히 믿기는 앞으로 90년, 이와 같은 일들이 지속되리라 기대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여인들 여럿이 함께 모여, 나눔으로 이루는 평화를 꽃피우는 기적들이 계속될 것을 믿습니다. YWCA가 있어 동시대를 사는 이 땅의 동포들이 하늘로서 임하는 평화를 누리게 될 것이며, 특별히 현대판 일곱 귀신에 사로잡혀 방황하는 이 땅의 자녀 세대에게 밝은 미래를 선물하게 되리라 기대합니다. YWCA가 있어 우리 모두 계속 행복할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