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YWCA
 
 
 
 
 
작성일 : 13-09-11 22:57
죄는 어디에서 오는가-한국ywca 총회 주제발제문 /박경미(이대 기독교학과교수)
 글쓴이 : 안양YWCA
조회 : 2,698  
[주제강연1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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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글은녹색평론20119-10월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죄는 어디에서 오는가
 
박 경 미(이화여대 기독교학과 교수)
 
 
1
 
미국의 핵무기 제조계획, 맨해튼 프로젝트의 총책임자였던 오펜하이머는 특이한 인물이었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천재적인 이론 물리학자였을 뿐만 아니라 문학과 철학, 종교에도 조예가 깊었다. 호메로스와 플라톤을 희랍어 원문으로 읽었고, 단테의 신곡을 읽기 위해 이태리어를 배우고, 고대 인도철학에 심취해서 그것을 원문으로 읽고 싶어 산스크리트어를 배울 정도였다. 핵실험이 성공하고 원자탄이 폭발하는 것을 보면서 그는 힌두 경전 바가바드기타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고 한다. “이제 나는 죽음이, 세계의 파괴자가 되었다.” 나중에 그는 미국 정부의 수소폭탄 제조계획에 반대하고 매카시 광풍으로 인해 고초를 겪기도 했다. 그는 최초의 원자로 설계자였던 엔리코 페르미에게 보낸 편지에서 원자폭탄을 만들 것이 아니라 방사성물질을 독일의 밭에 뿌리면 손쉽게 50만 명 정도의 독일인들을 죽일 수 있지 않을까라고 썼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그는 괜찮은 사람이었을 수 있다. 탐미주의자였을 수도 있고 지적 속물이었을 수도 있다. 원폭 투하가 성공한 후 그는 한편으로는 우쭐해 하고, 또 한편으로는 자기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두려워했다. 그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일본 사람들을 떠올리며 저 불쌍한 사람들, 저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몇 번이나 중얼거렸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편지에 썼다는 말은 섬뜩하다. 그 글을 쓰는 순간 그의 머릿속에 있었을 생각들을 떠올리면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프리모 레비의 물음이 떠오른다. 그는 핵분열에 수반되는 방사능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수많은 살아 있는 사람들을 죽음과 처참한 불행 속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그는 과학자로서 원폭실험을 안할 수 없다고 했다. 1960년 히로시마를 방문해서도 그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한 사람의 비범한 과학자이자 교양인이고,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장점과 단점을 가진 인간이었을 그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이것이 인간인가?
맨 처음 핵분열 연쇄반응을 발견한 과학자들은 이미 그 위험성을 알고 있었다. 다카기 진자부로는 원자력신화로부터의 해방에서 핵분열 현상에 대해서 알기 쉽게,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핵기술이 발전하기 전까지 인류의 모든 기술은 기본적으로 분자단위의 변화에 근거한 것이었다. 원자 주위의 전자의 변화에 의해 원자와 원자, 분자의 결합이 변하면서 일어나는 에너지의 방출이나 흡수를 활용한 것이었다. 이때 원자핵은 전혀 건드릴 수 없었다. 원자핵은 매우 단단하게 결합되어 있어서 분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인위적인 방법을 통해 원자핵을 불안정하게 하거나 쪼갤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핵분열 현상이 일어날 때 핵자를 결합시키는 힘, 즉 핵력이 엄청난 에너지로 방출되면서 동시에 방사능이라는 파괴적인 물질이 함께 나온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과학자들은 방사능이 무서운 물질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보다는 핵분열에서 일어나는 에너지를 활용할 가능성을 생각했다. 그러나 그 에너지의 활용가능성 역시 대단히 파괴적인 것이었다.
1939년 레오 시라드라는 물리학자는 실험을 통해 핵분열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세계가 재앙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글을 남겼다.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 역시 1944년 아직 원자폭탄이 만들어지기 전에 기본적으로 이것은 핵무기의 재료가 될 것이다. 이것은 치사성 방사능을 대량으로 방출하는 기술이며, 그러한 테크놀로지를 앞으로 일반인들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핵분열 현상을 발견했을 때 과학자들은 이미 이 엄청난 에너지가 원자폭탄으로 사용될 것이고, 그것이 인류에게 재앙이 되리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았던 것이다.
이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현상을 인간이 알게 되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핵분열 현상이 알려진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계는 2차 대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들었고, 이를 계기로 핵무기 제조의 가능성은 대단히 구체적인 것이 되었다. 레오 시라드를 위시한 과학자들은 나치 독일이 핵무기를 손에 넣기 전에 먼저 선수를 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인슈타인조차도 처음에 이 생각에 동참했다. 그래서 일군의 물리학자들이 나서서 미국 정부에 원자탄 개발을 촉구했고, 미국은 얼마 후 맨해튼 프로젝트를 수립한다. 그 뒤는 우리가 잘 알듯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지구를 수십 번 폭파하고도 남을 핵무기, 그리고 스리마일과 체르노빌, 후쿠시마이다.
핵분열은 생명체가 서식할 수 있는 자연세계 안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현상이다. 지구별이 형성되는 아득하게 긴 시간 동안 핵분열 현상을 다 일으켜서 방사능이 사라지고 안정적이 된 후에야 지구상에 생명체가 서식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핵분열이란 그런 지구현상을 거꾸로 돌려서 생명체가 살 수 없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자연계에 없는 물질의 운동을 인위적으로 투입하는 것이고, 그 결과 엄청난 에너지와 함께 방사능 물질이 일상세계에 쏟아져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결국 핵분열 현상은 모든 생명체의 안전을 위협한다. 왜냐하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서식하고 있는 물질세계의 안전성이 원자핵의 안정성에 근거하고 있고, 핵분열이란 바로 그 원자핵의 안정성을 무너뜨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단언해서 말하자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체르노빌, 후쿠시마는 오늘날 과학이 살인과 뗄 수 없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류 최고의 지적 능력이 집약적으로 발휘되어 결과적으로는 인간을 포함한 자연세계를 죽이는 일에 동원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살인행위가 멈춰지지 않는다는 것은 과학자들과 정치가들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리학에서의 핵분열현상은 생물학에서의 생명복제 현상과 쌍둥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그것은 둘 다 생명세계의 가장 근원적인 안정성을 어지럽히며, 따라서 절대적인 악이다.
 
2
핵분열현상을 발견하고 과학자들이 온통 핵무기개발에 매달렸을 때 그들의 머릿속은 나치 독일이나 소련의 손에 핵무기가 먼저 들어가면 온세상이 망한다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래서 원폭실험이 성공하고 곧 이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터졌을 때 맨해튼 계획에 참여했던 과학자들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덕분에 전쟁이 일찍 끝났다고,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구하게 되었다고 환호했다. 정말 그랬을까?
실은 당시 독일은 핵무기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일본은 미국이 핵폭탄을 떨어뜨리지 않았어도 망하게 되어 있었다고 한다. 당시 많은 군사전문가들이 일본의 항복은 시간문제라고 했다. 늦어도 1945년 말이면 일본은 항복할 것이라고 했다. 영국의 전쟁사가 리델 하트에 따르면 당시 일본은 선박의 10분의 9 정도가 침몰하거나 항해가 불가능했고, 공군력과 해군력은 재기불능의 타격을 받았고, 공업은 파괴되었으며, 국민들의 식량공급량 또한 점점 줄어들어 일본의 붕괴는 확실했다.(Lidell-Hart, History of the Second World War, Casell, 1970) 또한 미국 전략폭격조사단의 보고에 따르더라도 일본은 원자폭탄 투하 없이도 무조건 항복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말하자면 군사적인 이유에서는 원폭 투하를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미국은 일본의 항복을 좀 더 기다리지 않았을까?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하나는 당시 소련이 막판에 참전해서 전리품을 할당받으려 하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전쟁을 끝내고 싶어 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미 맨해튼 계획에 2억 달러나 썼기 때문에 미국 국민들에게 뭔가를 보여줘야 했다는 것이다.(쓰루미 쓘스케, 전향』』182-3) 아마 후자의 이유가 더 직접적이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만들었으니 써봐야 하지 않겠나 하는 심사였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가져다주는 역사상 중대한 결정들은 대개 이런 식으로 내려진다. 이 두 가지 국제 정치적, 국내 정치적 이유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무고한 사람들이 당한 고통과 그 후 지금까지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들에 비추어보면 너무나 사소한 이유들이다. 아니 그런 고통과 비참을 가져다 줄 정당한 이유라는 것은 이 세상에 없다.
결국 인간이 문제인 것이다. 당시 핵무기 제조를 계획 실행하고 원폭 투하를 결정했던 사람들에게 세계는 어떤 것이었을까? 그들에게 세계는 국가만으로 구성되어 있고, 인간은 그 국가의 일부분일 뿐이었다. 그것은 살아 있는 인간을 국가라는 거대한 기계의 한 부품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인간을 기계로 취급하는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은 살아 있는 구체적인 인간을 생각했다면 당연히 떠올랐을 복잡한 질문들을 하지 않았다. 방사성 물질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또 그런 물질이 환경에 들어왔을 때 구체적인 인간과 사회에 실제로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인가. 당연히 했어야 했던 이런 질문들을 하지 않고, 그들은 서둘러 핵무기개발을 실행에 옮겼던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정치 지도자들이나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머리로 파악하고 예측하는 것이 세상의 전부인양 행동했다. 살아 있는 사물을 기계로 대할 때에는 안다고 착각하기가 쉽다. 그래서 그들은 마치 삶이 자기들 손아귀 안에 있고, 삶을 잘 알고 예견할 수 있기나 한 것처럼 주제넘게 오만을 부렸다. 그러나 그들은 알지 못했다. 게다가 그들은 얼마나 왜소했던가. 국가라는 경계 앞에서 상상력과 도덕과 양심이 멈춰버리는 왜소한 인간들이 전지구적인 가공할 위력을 가진 핵에 대해 결정권을 가졌던 것이다. 왜소하기 짝이 없는 인간들이 자신들의 조그만 머리통 속에서 상상하고 예측하는 것을 전부라고 생각하고 절대시했을 때 어떤 파괴적인 결과가 초래될 수 있는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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