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YWCA는 고통 속의 피해자와 굳건히 연대할 것이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성범죄 의혹을 뒤로 하고 죽음으로 생을 마감함으로써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그가 행한 수많은 업적들과 죽음에 대한 예의라는 당위 속에서, 성추행 의혹을 밝히라 말하는 것은 ‘애도’의 뒷전으로 밀려나 있어야 했다. 더구나 피해자가 성추행 고소를 한 다음날 박 전시장이 피해자에 대한 아무런 사과도 없이 목숨을 끊음으로서, 이 사건이 즉시 ‘공소권 없음’으로 발표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고 서울시를 성 평등 도시로 만들고자 했다 하더라도 그의 성추행 의혹을 죽음으로 덮을 수는 없다. 온갖 위협과 중상모략으로 피해자의 입을 막으려고 해도 피해자의 고통스런 목소리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박원순 시장 장례 이후 들려온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우리는 크나큰 놀라움과 분노를 감출 수 없다. 최초의 성희롱 사건을 변론하고 젠더특보를 설치하며 인권조례 제정 등에 애를 쓴 그가 위계적 관계 위에서 4년 넘게 피해자를 지속적으로 성희롱하고 괴롭혀왔다는 사실은,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보는 우리 사회 성차별 문화가 얼마나 뿌리 깊은지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서울시 관계자들이 피해자의 호소에 제대로 귀 기울이지 않고 묵살해 왔으며, 시장실과 비서실을 성희롱과 성추행 등 성폭력이 발생하기 쉬운 업무 환경으로 만들어왔다는 사실은 이 사건이 박 전시장 개인 차원이 아니라, 서울시에 만연해 있는 조직적인 성차별, 성희롱 관행으로 기인한다는 것을 명확히 밝혀주고 있다.
지금 목도되는 이 상황에서 우리 사회에 무엇보다 필요한 일은, 박원순 전 시장의 성범죄 사건 진상을 철저히 밝히고 관련된 이들의 책임을 묻는 일이다. 피해자가 성폭력 피해를 호소하는 데도 묵살해버린 책임과, 피해자의 고소 사실이 피고소인에게 유출된 경위 등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 아울러 공직사회에 뿌리깊은 성차별 관행과 여성혐오적 문화를 근절하여 또다시 이러한 성폭력 범죄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체계를 만들고 책임있는 조치들을 시행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4년이나 참고 말하지 않은 게 수상하다’는 식으로 피해자에게 책임을 씌우고, ‘당당하면 얼굴 보이고 나서라’는 식의 2차 가해 상황을 좌시할 수 없다. 다른 범죄와 달리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무고의 가능성을 주장하는 이들 때문에 겪는 피해자의 극심한 고통에 함께 눈물 흘림으로써 참여하며, 피해자의 목소리가 진실의 문을 열어젖히고 마침내 온전한 일상을 회복할 때까지 굳건히 연대할 것을 다짐한다.
한국YWCA연합회는 전국 53개 회원YWCA와 함께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一. 서울시는 박원순 전 시장의 성범죄 의혹을 감추려 하지 말고 진실을 규명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라.
―. 정부는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등,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규명을 위한 공식적 장치를 마련하여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
―. 확인되지 않은 온갖 억측과 중상모략, 가해 위협 등 피해자에 대한 폭력을 멈추며 이를 조장하는 언론은 각성하고 자중하라.
2020년 7월 17일
한국YWCA연합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