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YWCA
 
 
 
 
 
작성일 : 11-08-18 14:23
7월 월례기도회 말씀
 글쓴이 : 안양YWCA
조회 : 2,847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 청년정의
 
 
 
장윤재목사/이화여대 기독교학부 교수,교목
 
 
그 때에 처녀는 춤추며 즐거워하겠고 청년과 노인은 함께 즐거워하리니 내가 그들의 슬픔을 돌려서 즐겁게 하며 그들을 위로하여 그들의 근심으로부터 기쁨을 얻게 할 것임이라 (예레미야 31:13)
 
제 마음은 아직도 20대 청년 같은데, 어느새 오늘의 청년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기성세대가 되어버렸습니다.
성서에는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비유가 나오는데, 그것은 ‘잃은 양’의 비유, ‘잃어버린 동전’의 비유, 그리고 ‘잃었던 아들’의 비유 세 가지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여기서 하나 더 ‘잃은 것’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것은 바로 ‘잃어버린 세대’, 즉 우리의 청년들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스런 청년들이 갈 길을 잃었고, 자신을 잃었고, 또한 희망을 잃었습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지금의 20대만큼 능력 있는 세대도 없는 것 같습니다. 컴퓨터 등 디지털 활용도는 세계 어느 젊은이들 못지않고, 영어실력도 이제는 아시아 경쟁국들을 능가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대한민국 역사상 지금의 20대만큼 불행한 세대도 없는 것 같습니다. ‘88만원 세대’라고도 불리는 이 세대는 어려서 학원을 전전하며 협력보다는 경쟁을 배웠습니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면서 등록금 빚이 쌓였습니다. 대학을 졸업해도 청년실업의 벽에 부딪히기도 하고, 취직도 하기 전에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열심히 스펙을 쌓고 발이 부르트도록 뛰어다녀 어렵게 취직을 해도, 절반이 비정규직입니다. 한참 돈 벌 나이가 되면 노인 부양을 위한 사회적 부담으로 자기 저축은 한 푼도 못하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지금으로부터 25년 뒤인 2036년이 되면 두 명이 일해서 노인 한 명을 부양하는 초고령 사회가 됩니다.) 그런데 한평생 열심히 일하고 이제 은퇴할 나이가 되면 자신들을 위해 평생 낸 국민연금 보험료는 한 푼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50년이 지나면 우리나라 국민연금을 완전히 고갈됩니다.)
이것이 우리나라 20대 젊은이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암울한 시나리오입니다. 지금 여기 서 있는 저 자신을 포함해 이 나라의 40~50대 기성세대는 20~30년 후 지금의 20대 젊은이들에게 은퇴 후 삶을 의탁하게 됩니다. 그들의 생산과 노동에 의지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지금 이 나라의 기성세대들은 청년실업 해소니 반값 등록금이니 하는 이야기가 나오면 ‘내가 왜 저 아이들을 위해 세금을 더 내야 하느냐’고 반발합니다. 참 부끄러운 일입니다. 받기만하고 조금도 안 주겠다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이것은 공평성의 문제이고 정의의 문제입니다. 부끄럽지만, 어쩌면 지금 이 나라의 기성세대는 아마도 단군 이래 5천 년의 이 민족의 역사에서 가장 이기적인 세대, 가장 염치없는 세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기업들이 더 이상 일자리를 늘릴 수 없는 것이 분명한 상황인데도 우리 기성세대는 출구도 없는 캄캄한 무한 경쟁의 동굴 속으로 우리의 자녀들을 밀어 넣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 동굴의 끝은 어디일까요?
저는 최근 한 일간지에 연재되고 있는 ‘혼자 살다 혼자 죽는 사회, 일본’이라는 특집기사를 보고 많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지금 일본에서는 사망 후 4일 이상이 지나 발견되는 이른바 고독사(孤獨死)가 한 해 무려 1만 5천 여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죽어도 시신을 인수할 가족이 없는 무연고 사망자는 3만 명을 넘긴다고 합니다. 현재 일본의 수도 도쿄에서 사망하는 사람 10명 가운데 3명은 장례식 없이 곧장 화장터로 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울어줄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울어줄 사람도 없는데 장례식은 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울어줄 사람이 없는 이유는 가족을 꾸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현재 일본의 30대 남성 10명 가운데 3명이, 그리고 30대 여성 10명 가운데 2명이 50대가 될 때까지 결혼을 못할 거라고도 합니다. 결혼을 못 하는 이유는 일자리가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30대 초반 직장인 가운데 결혼한 사람의 비율을 조사해봤더니 정규직은 60%, 비정규직은 30%, 그리고 프리터족은 겨우 17%가 나왔습니다. 프리터족이란 일자리가 없어 아르바이트만 전전하는 청년들을 말합니다. 일자리가 불안한 젊은이들은 결혼을 기피하고, 이것은 저출산과 경기침체로 이어지고, 이것이 다시 일자리를 위협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일본은 서서히 ‘혼자 살다 혼자 죽는 사회’로 침몰하고 있습니다. 이 보도가 저의 관심을 끌었던 이유는 우리나라의 인구 구성 비율이 일본을 약 10~15년 차이를 두고 바짝 뒤쫓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지금 청년들의 문제를 방치하면 일본처럼 될지 모릅니다. 청년정의가 확립되지 않으면 그렇게 될지 모릅니다. 이 땅에 아기 울음소리가 사라지고 젊은이들의 얼굴에서 해맑은 웃음이 사라지는 순간, 이 사회는 스스로 무너질지도 모릅니다.
경애하는 여러분, 마태복음 20장에는 유명한 포도밭 일꾼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포도밭 주인이 이른 아침에 일꾼들을 고용해 한 데나리온을 주기로 하고 일을 시켰습니다. 그 주인은 오전 9시와 12시에 그리고 오후 3시쯤에 다시 일꾼들을 불러들였습니다. 그러고는 저녁에 하루 품삯을 주는데 모두 똑같이 한 데나리온씩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일찍 시작해 긴 시간 일을 한 사람들이 불평을 터뜨립니다. 하지만 주인은 그 중 하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친구여, 나는 너를 부당하게 대한 것이 아니다. 너는 나와 한 데나리온을 받기로 합의하지 않았느냐. 너의 품삯이나 받아 가지고 돌아가라.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unto this last) 너에게 준 것과 똑 같이 주는 게 내 뜻이다.”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똑 같은 임금을 주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왜냐하면 그 임금은 그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의 임금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선악을 가려서 선엔 상 주고 악엔 벌을 주는 그런 징벌적 정의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공평한 기회를 주었으니 결과는 알아서 책임지라는 식의 그런 시장적 정의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의 생명의 권리를 회복시켜주는 자비의 정의입니다. 애정의 정의입니다.
저는 오늘날 “나중에 온 이 사람들”이 바로 우리의 청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노인들이 아침 일찍 온 세대라면, 장년들이 오전 늦게 혹은 오후 일찍 온 세대라면, 청년들은 가장 늦게 우리의 삶의 터전인 이 이 포도원에 합류한 세대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우리와 똑같은 데나리온 주어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그리고 우리처럼 이 땅에서 생명의 기회와 축복을 누리며 살아야 하고,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바로 이러한 포도원 주인의 정의가 바로 ‘생명정의’요 또한 ‘청년정의’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아무 것도 하지 못한 부끄러운 기성세대로서 감히 몇 마디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미국의 하버드 대학에는 한 가지 흥미로운 일이 있습니다. 마지막 수업이 평상시와 매우 다르게 진행된다고 하는데, 토론도 없고, 질의응답도 없고, 교수님은 칠판에 아무것도 적지 않고 기말시험의 형식에 대해서만 간략히 설명한다고 합니다. 학생들은 메모를 한 뒤 조용히 노트북을 닫습니다. 그러나 아직 수업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 사회에 나가 거목으로 성장할 학생들을 향해 교수님들은 지금까지 수업 시간에 아껴두었던, 스승으로서 최고의 조언이라고 생각되는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것입니다. 그 조언들은 모아서『하버드 졸업생은 마지막 수업에서 만들어진다』는 책이 나왔습니다. 그 중에 한 경영대학 교수님의 이야기가 매우 인상적입니다. 그 교수님은 학생들에게 이런 이상한 조언을 한마디 던지신다고 합니다. “5년마다 열리는 모교 방문 행사에 절대 오지 마라!”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모교 방문 행사에 오면 서로 인사도 하고 도움도 주고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오지 말라는 걸까요? 이 교수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졸업생들이 동창회를 의식해 옛 급우들에게 자랑할 거리를 생각하며 살다보면 ‘짧은 시간에 자신의 이력을 돋보이게 해줄 일이나 순식간에 떼돈 벌 일’만 고르게 된다고 합니다. 그 결과 지식과 재능이 넘치던 인재들이 돈벌이는 꽤 되지만 자신에게 적합하지 않고 또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지도 않는 직장에서 인생을 허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젊은이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저는 바로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번뿐인 인생을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거기에 끌려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다움’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자기다울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자기‘다움’은 자기‘존중’입니다. 유사 이래 지금의 나와 똑같이 생각하고, 나와 똑같이 말하고, 또한 나와 똑같이 걷는 사람은 이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고, 또한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려 구원하려 한 너무도 귀하고 아름다운 창조물입니다. 폴 틸리히라는 신학자는 “기독교의 복음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나 같은 인간도 하나님이 받아주셨다는 이 한마디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실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부족한 이대로 용납하시고, 받아주시고, 품어주시는 분입니다.
젊은이 여러분, 세상은 어둡습니다. 하지만 빛이 있는 한 우리는 절망할 수 없습니다. 과학자들이 이런 실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장독 속에 물을 넣고 쥐를 빠뜨려 보는, 조금은 야만적인 실험입니다. 항아리 입구를 막아 캄캄하게 했더니 쥐들은 3분 후에 모두 익사했습니다. 사인은 수영을 못해서가 아닙니다. 쥐는 수영선수입니다. 이번에는 장독에 한 가닥 빛이 비추게 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쥐들은 36시간이나 생존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3분 만에 죽은 쥐들의 사인은 무엇이었습니까? 절망감이었습니다. 한 줄기의 빛도 없을 때의 공포감, 두려움이었습니다. 그것이 모든 것을 포기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젊은이 여러분, 세상은 어둡습니다. 하지만 빛이 있는 한 우리는 절망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바로 우리의 위로와 희망의 빛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본문인 예레미야31:13을 보니까, “그 때에 처녀는 춤추며 즐거워하겠고 청년과 노인은 함께 즐거워하리니 내가 그들의 슬픔을 돌려서 즐겁게 하며 그들을 위로하여 그들의 근심으로부터 기쁨을 얻게 할 것임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위로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특히 청년과 노인을 ‘함께’ 위로하여 근심으로부터 기쁨을 얻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의 사랑스런 청년들을 친히 위로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의 빛이 있는 한 우리 청년들을 절대 절망할 수 없습니다. 절대 포기할 수 없습니다.
영국의 수상이었던 윈스턴 처칠이 하루는 옥스퍼드 대학의 초대를 받아 구름과 같은 청년들 앞에서 한 유명한 강연이 있습니다. 단 세 마디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아주 유명한 강연입니다. 때는 2차 대전 중이었고 히틀러의 군대가 런던을 폭격하며 승승장구하던 때였습니다. 사회자가 처칠을 소개했습니다. 중절모에 항상 시가를 입에 물고 사는 이 노신사는 천천히 연단으로 걸어나옵니다. 그리고는 천천히 모자를 벗어 옆에 놓고 시가도 재떨이 위에 내려놓습니다.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그가 입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한마디 합니다. "Don't give up!" 사람들은 수상이 또 무슨 이야기를 할까 숨을 죽이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처칠이 두 번째로 입을 열었습니다. "Don't give up!" 그러다니 중절모를 집어 다시 머리에 쓰고 재떨이 위에서 시거를 든 다음,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합니다. "Don't give up!"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Don't give up" 즉 ‘포기하지 말아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친히 여러분을 위로하여 근심으로부터 기쁨을 얻게 하실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의 빛이 있는 한 우리 청년들을 절대 절망할 수 없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은 절대 포기할 수 없습니다. 이 땅에 청년정의를 세우는 일에 더욱 힘을 내서 달려갈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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