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경 WCD 한국위원회 공동대표가 24일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서 열린 ‘2015 여성평화 걷기축제’에서 북한 여성들과 해외 여성들이 함께 바느질해서 만든 가로 4m, 세로 4m짜리 평화의 조각보를 소개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 기적이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다.”
남북 관계가 빙하기를 맞은 가운데 세계 15개국 여성운동가 30명이 남북한 정부의 승인 아래 분단의 상징인 비무장지대(DMZ)를 북에서 남으로 종단하는 국제여성평화걷기를 성공적으로 치렀다. 5월 24일은 ‘평화와 군축을 위한 세계 여성의 날’인 동시에 5·24 대북 제재 조치가 내려진 지 5년째 되는 날이란 점에서 이번 평화걷기 행사가 갖는 의미는 더욱 남다르다.
위민크로스DMZ(WCD)는 내년에도 5월 24일에 맞춰 DMZ 평화걷기 행사를 추진할 계획이다. 특히 내년에는 올해와 반대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갈 구상이고 올해 이루지 못한 판문점 통과도 시도할 예정이다.
세계사 속에서 여성들은 경계를 넘어 평화운동을 주도했다. 1970년대 북아일랜드를 황폐하게 했던 격렬한 정치적 갈등 종식을 도운 것은 여성이었고, 10여 년 전 라이베리아의 잔혹행위 중단을 외쳤던 사람들도 여성이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1991∼1992년 분단 이후 첫 남북 여성 교류였던 ‘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토론회를 위해 남북 여성들은 판문점을 거쳐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판문점을 통한 최초의 남북 민간교류가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소떼 방북이 아니라 여성들이었다는 얘기다.
이연숙 WCD 한국위원회 공동대표는 “국제여성평화걷기는 세계의 여러 분쟁지역에 던지는 화해와 평화의 메시지”라며 “아직도 계속되는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꿔야 한다. DMZ를 세계 평화의 순례지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향민인 그는 “분단으로 가족과 헤어지고 고향을 떠나 낯선 땅에 살면서 통일을 애타게 기다리던 수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80대가 됐다”며 “국제여성평화걷기는 슬픔과 한이 서린 DMZ를 희망과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여성평화걷기에는 세계적인 여성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을 비롯해 라이베리아 출신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리마 보위, 아일랜드 출신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메어리드 코리건매과이어 등이 참가했다. 이 중 12개국이 한국전쟁 참전국이다.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15개국의 다른 나라에서 온 여성들이 남북 두 나라의 연결점을 만들었다. 우리가 이룰 수 있으리라고 생각지 못한 것을 성취했다는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일본인 참가자인 다카가토 스즈요 전 오키나와 시의회 의원은 “오키나와에서 돌아가신 한국인 위안부 할머니는 통일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소원을 품고 살았다. 할머니의 소원을 가슴에 안고 걸었다”며 “한반도의 평화협정 체결만이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들의 용기 있는 행동에 각계의 격려가 이어졌다. 놈 촘스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 교수는 성명에서 “한국의 극심한 갈등은 피해자들에게는 끔찍한 비극이며 세계에 심각한 위협이 돼 왔다”며 “국제평화운동가들의 용기 있고 신념에 찬 이 결정은 상처의 치유를 시작하고 평화롭고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할 충분한 자격을 가진 한국인들에게 그 삶으로의 문을 열어줄 경이로운 노력”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도 WCD에 보낸 서신에서 “이 아름답고 용기 있는 행사가 분단 70주년을 맞는 우리 민족 모두에게 큰 격려와 기쁜 선물이 될 것”이라고 격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