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의 기억. 택시안에서 필자의 직업이 뭔지 궁금해 하던 기사가 이내 알 것 같다는 표정으로 ‘학습지 하세요?’하고 물었다. 아니라 하자 ‘보험설계사이신가보네’하고 혼자 끄덕였다. 기혼여성의 직업이 주로 학습지 아니면 설계사라는 이야기일거다. 실제로 금융위기 실업대란의 최대 희생자가 여성이었고, 비정규직 근로 여성의 비중이 현저히 높기 때문에 기혼여성의 직업으로 학습지나 설계사를 떠올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2009고용평등지표에 의하면 남성대비 여성임금이 69.1%이며, 시간제근로자의 비중이나 증가율도 남성에 비해 여성이 훨씬 높게 나타났다(여성은 2002년 10%→2010년 16.4%, 남성2.7%→4.4%). 또한, 경기도 임금근로자가운데 비정규직근로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남성은 24.6%에 비해 여성은 40.5%로 현저히 높고, 경제활동참가율도 남성은 전국평균에 비해 높은 수준인데 반해 여성은 평균이하로 나타나 여성일자리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주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UN여성차별철폐협약 및 OECD가입국으로서의 수준을 유지하기위해 여성경제활동참가율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정책적 수단을 활용하고 있지만, 정작 20대 후반에서 30대 중·후반까지의 여성들이 임신과 출산, 육아 등으로 경력이 단절되는 ‘M자형 커브’ 현상은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고, 재취업을 위해서는 훨씬 질이 낮은 일자리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렇다보니 젊은 부부들은 아예 아이 낳기를 미루거나 포기해 출산율은 바닥으로 떨어져 사회의 미래까지 불투명해졌다. 국가 간 성평등 척도를 비교한 바에 의하면 여성경제활동참가율이 높은 국가일수록 출산율이 높다. 여성이 일할 수 있는 사회는 곧 아이를 행복하게 키울 수 있는 사회라는 반증이다.
우리사회는 여성 ‘일자리’도, ‘일할 기회’도 충분하지 않다. 그나마 대책이라고 내놓은 여성 일자리지원센터도 ‘일자리’가 있어야 지원이 가능하다. 채용 시 여성을 뽑아달라고 구걸에 까깝게 인사담당자에게 사정하는 실정이란 안양YWCA 취업설계사의 말이 이를 반증한다. 그렇다고 자본도 없고, 경험도 없는 여성들이 창업 시장에서 성공하기란 더더욱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취업 후에도 가족친화적인 직장문화, 가사분담, 계속일할 수 있도록 돕는 사회적 지원시스템이 뒷받침 돼야 하지만 이마저도 충분치 않다.
지난 6월 국제노동기구 ILO총회에서 가사 노동자를 위한 협약이 통과돼 국내비준을 앞두고 있다. ‘식모’로 출발한 고용 가사노동이 반세기만에 ‘가정부’란 돌봄노동으로 자리를 잡는 셈이다.
신규직종개발도 지역 내 신규산업을 육성해서 여성친화적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것도 쉽지 않은 현실에서, 현재 여성들이 취업현장이 보다 안정된 좋은 일자리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정책적인 지원을 하는 것이 우선 현실가능한 방법일 수 있겠다. 돌봄노동의 사회적 인정을 통해 여성들의 취업 중도 포기요인인 출산육아, 가사 등의 사회서비스를 지원하고, 한편으로는 여성들이 몰려있는 불안정한 시간제일자리를 질 좋은 일자리로 변화시켜낼 수 있는 방법이 모색돼야 할 것이다.